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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210.113.115.246
제목 요요의 역사 [고대에서 현대까지]
작성자 요앤조이 작성일 2005-06-16 06:22:01 조회수 3474
   
 

 요요의 기원과 현대 요요의 역사를 정리해놓은 자료입니다.

 

원출처: 럭키의 요요 역사 - http://www.yo-yos.net/Yo-yo%20history.htm

              이미지는 위의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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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의 진정한 기원은 앞으로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많은 나라에서 ‘요요의 기원은 우리나라다’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어떤 나라도 명백한 증거는 없다. 몇몇 역사가들은 (마치 문명과 같이) 복수기원설을 얘기하고 있지만 현재 가장 강력한 설은 기원전 1000년경 중국에서 처음 발명됐다는 설이다. 요요자체의 기록은 중국에 없지만 요요와 매우 비슷한 놀이도구인 ‘디아볼로’는 중국의 기록에 남아있다. 언어학의 전문가는 ‘요요’라는 이름은 동양문화를 어원으로, 필리핀에서 몇 백년 간 이 완구를 가리켜 사용한 말이라고 한다.


다른 역사가는 요요가 그리스에서 유래됐다고 주장한다. 기원전 500년 정도 전에 요요가 그리스에 있었다는 증거로서, 현대의 요요와 비슷하게 생긴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려진 원반을 이야기한다. 고고학자들은 이것이 진짜 요요인지, 단지 자갈을 실타래에 감아서 사용한 건 아닌지 논의하고 있다. 실제, 이런 원반은 도기 재질의 깨지기 쉬운 물건이어서 완구로서 사용됐을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와 같은 설의 발안자는 소년이 요요와 같이 생긴 것을 갖고 놀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그리스의 원반을 근거로 삼고 있다.


어느 쪽이든 요요가 몇 세기를 이어온 전통적인 완구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외에 자주 인용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완구’라는 설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다. 이 설은 오랜 시간 사람들 사이에 오가며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그 주장을 증명할만한 증거는 없다.


또 다른 유명한 잘못된 설은 요요는 수세기 전 필리핀의 무기였다는 설이다. 이 설은 ‘나무위에 사냥꾼이 올라가 무겁고 거대한 요요를 잡고 있다가 사냥감이 지나가는 순간 요요를 사냥감의 머리를 겨냥해 내던진다. 잘하면 사냥감은 그래도 기절해버리고, 실수하더라도 아직 사냥꾼에겐 다른 기회가 생긴다’라는 것인데 하지만 물리학적으로 볼 때 이 설은 불가능하다. 수 세기동안 필리핀 내에서 인기 있는 완구로서 존재했던 것은 확실하지만 요요가 수렵용 무기로서 사용되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이 설은 1930년대 대부분 필리핀 출신으로 구성돼 있던 던컨의 데몬스트레이터(공연자, 시연자)들에 의해 알려진 것이다. 그 이야기는 요요를 판매하는데 도움이 됐지만, 오랜 기간 반복되면서 정설이(도시전설화)된 것이다.


18세기 후반에 선교사들에 의해 극동으로부터 유럽에 소개됐다고 역사학자들이 믿을 정도로 당시 요요의 인기는 대단했다. 최근 발견된 1630년에서 165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소년이 요요를 가지고 놀고 있는 도안이 그려진 네덜란드의 타일은 프랑스의 참조자료보다 150년 정도 앞선 것으로 생각된다. 이 타일은 1765년 경 인도의 관련 자료인 chucki (발음은 choo key)보다도 앞선 것이다. 1세기 반 쯤 전에 요요가 등장했다는 것은 ‘요요는 시대를 초월해서 어디에나 있었던 완구이지만 다만 문헌에 남지 않았던 것뿐이 아닐까? 라는 의문이 떠오르게 된다. 단지 중세의 작가와 예술가들에게 아이들의 놀이인 요요는 소재로 사용하기 적합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18세기 후반 중, 요요는 프랑스 귀족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완구는 이 세기동안은 요요라고 불리지 않았다. 가장 일반적인 이름은 ‘bandalore’였다.

‘bandalore’는 프랑스어가 어원으로 영어로는 ‘quiz'라는 의미와 함께 이 완구의 이름으로 사용됐다. 다른 말로는 l’emigrette(출국)、de Coblenz (다수의 프랑스 귀족의 망명객이 모여 사는 마을)그리고 incroyable (프랑스 멋쟁이 신사)등이 있다. 이와 같은 용어는 모두 프랑스 대혁명과 역사적으로 중요한 연관이 있다. 귀족의 목이 잘려나가기 시작해서 길로틴의 시대라고 불리던 이 세기에 요요는 프랑스 귀족층의 세련된 장난감이 됐고, 이 귀족들과 함께 망명한 요요는 결과적으로 이렇게 다채로운 이름을 갖게 됐다. 요요가 혁명에 의한 혼란 때문에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들어왔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quizzes'로 불린 요요는 1789년 영국에서 개최된 pecham페어에서 판매됐다고 기록돼 있다.


요요는 귀족층에서 인기가 있어서, 이 시대의 문헌에 가끔 등장한다. 이러한 문헌의 대부분에서 아이가 아닌 어른이 갖고 놀고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아이들이 갖고 노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기록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이 기정사실이었는지, 하나의 유명한 예외는  Viznee LeBrun부인에 의해 그려진 당시 4살이었던 루이 17세이다. 이것은 18세기에 아이가 요요와 함께 그려진 일러스트로서 가장 유명하다. Lafayette장관이 요요를 플레이하면서 부대를 지휘하고 있는 모습이나 ‘Mirabeau와 부대와 요요’등과 같은 풍자화가 그려졌던 것도 이 세기이다.

또 하나의 재미있는 문헌으로는 1793년의 영국에서 쓰여 진 ‘바론 남작의 여행과 경악의 모험’에서 요요는 quizzes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이것을 사용하는 것을 ‘quizzing'이라고 불렸다. ’부인들은 혀 이외에도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도구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각각 3개의 quizzes로 하나는 그녀의 입을 막기 위한 줄로부터 이어진 펜던트에, 나머지는 양쪽 손에 갖고 있었다. 부정적인 의견을 표현할 땐 손에 있는 quizzes를 던지고, 긍정적인 표현을 하고 싶을 때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quiz 펜던트를 내려감아 올렸다.


이 완구가 처음 미국에 소개된 것은 언제인지 확실치 않다. 미국에서의 첫 문헌은 1866년 James L. Haven와 Charles Hettrick에 의해서 취득된 ‘새롭고 편리한 bandalore’의 특허였다. 그것은 요요의 구조에 대해, 중심에 축을 넣음으로서 2개의 몸체가 고정되고 그로서 금속을 사용하지 않고도 만드는 것이 가능하게 됐다. 이 이전에도 미국에서 이 완구가 알려져 있던 것은 확실하지만 어느 정도 지명도를 갖추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 후 50년 정도 동안 수많은 다른 특허가 요요의 다양화와 함께 제출되었다. 요요라는 단어는 1916년 미국의 과학 잡지에서 ‘필리핀 완구’로서 처음 소개됐다. 이 기사에서는 요요의 제작 방법이 수록돼 있었고, 이 완구의 이름이 최초로 ‘요요’로 불리게 된다.


1928년, 필리핀으로부터 이민을 온 Pedro Flores가 ‘요요’라는 이름으로 미국에서 완구를 생산됐고 여기서부터 근대요요의 역사가 시작됐다. Pedro Flores는 이 완구에 있어 매우 중대한 세 가지 일을 해냈다.

첫째는 자기 자신이 요요라는 용어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모국인 필리핀에서 이 완구의 호칭이 널리 사용됐기 때문에 그는 이 완구의 이름을 ‘요요’로 명명했다는 것이다. 이 호칭은 미국의 문화나 출판물 등에서 이 완구의 설명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됐다.


두 번째는 줄을 축에 묶거나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리의 형태로 축 주위에 줄이 감기는 형태를 채택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요요의 공회전이 가능해져서 요요플레이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됐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일은 이후 계속될 폭발적인 유행의 필수불가결적 요소인 콘테스트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요요는 지난 수세기간 계속 존재해왔지만, 20세기에 들어 가장 인기 있는 완구의 하나로 구가하게 된 것은 콘테스트덕분이었다. 1929년 이 완구의 수요는 엄청났다. ‘포퓰러 메거진’지에서 필리핀 요요를 만드는 방법을 공표할 정도였다. flores는 ‘yo-yo’라는 이름을 상표 등록했지만, 이미 말했듯이 그가 요요를 개발한 것도, 요요의 특허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실제 flores는 그의 상표 등록과 회사를 Donald F. Duncan의 회사에 매각할 때까지 극히 단기간 동안밖에 요요를 제조하지 않았다. 당시 Duncan은 Flores의 상업상 경쟁 상대였지만 요요에 대한 상표 등록의 권리를 갖고 있지 않았다. Donald F. Duncan은 마케팅의 천재였고 flores로부터 상표등록의 권리를 이양 받은 이후 The Duncan Yo-Yo Company를 이후 35년 간 미국의 요요 시장의 85%를 차지하는 굴지의 요요 제작사로 발돋움 하게 된다. 당시 던컨 요요 맨의 등장과 그의 콘테스트는 미국의 젊은 세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되었다.

던컨 초기의 요요 프로모션의 성공은 그가 무료 광고에 정통했다는 것에 의의가 크다. 그는 콘테스트의 캠페인을 지방 신문의 구독 촉진과 연계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스폰서로 참가하는 신문사는 콘테스트에 참가할 참가자에게 콘테스트에 참가하기 위해선 자사의 신문을 구독하게 유도함으로서 이익을 얻었다. 대신 신문사는 무료 광고와 대회 상품을 제공했다. 이 방법은 대성공을 거두어 20세기 초반에는 대기업 신문인 william Randolph Hearst 와 제휴하기도 했고, 요요 콘테스트는 발행 부수 촉진에도 한 역할을 했다. 1930년대 던컨이 진행한 몇 개의 큰 캠페인은 hearst계 신문이 점유한 도시와 제휴해 진행됐다.


또, 던컨은 유명인사의 노출과 관련된 프로모션을 도입했다. Douglas Fairbanks나 Mary Pickford, 그리고 명예의 전당에 올라가 있는 Lou Gehrig과 Hack Wilson등의 유명인사의 손에 요요를 들고 있는 사진이 찍혀있다. ‘our gang'과 같은 유명한 영화의 스타를 이용한 프로모션은 ’Gold seal'이나 ‘o-boy' 요요의 프로모션에 사용됐다. 만약 유명인사가 인기가 없는 도시가 있다면 그곳에선 공무원이 대상이 됐다. 시장, 경찰서장, 의사 등 모든 수단을 요요 캠페인을 촉진하기 위해 활용했다.


던컨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로 판매망을 넓혀갔다. 던컨은 금장이 둘러진 토너먼트 모델이나 ‘o-boy'로 불리는 초보자용 모델 등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몇 십 년 간 많은 한정 요요도 만들었다. The 30s는 금속제의 소리 나는 요요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1950년에 첫 플라스틱 요요이며 첫 라이트 업 (발광) 요요이기도 한 모델을 발표했다. 1958년에는 ’버터플라이‘가 발매되었는데, 이 디자인은 50년 전 처음으로 특허를 취득, ’버터플라이‘라고 하는 요요의 형태의 기원이 됐다. 50년대 중반에서 60년대 초까지 Litening, Rainbow, Chief, Suede, Day-Glo, Satellite, Champion, Luck-E-JADO, 그리고 Super Practice등 콜렉터들을 절망시키기 충분한 콜렉션용 고가 요요들이 생산됐다. 던컨의 가장 전성기 시대였다. 던컨은 27명의 전속 프로 데몬스트레이터를 고용했다. 생산의 최전성기에 던컨의 공장은 640명의 직원을 고용해서 하루에 60,000개의 요요를 생산, 1962년에는 연간 4500만개의 요요를 판매했다.


던컨은, 그들의 효과적인 마케팅에 의해 파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0년 이상에 걸친 이 완구의 프로모션에서 거둔 성공은 ‘yo-yo'라는 단어를 일반화시켰다. 던컨의 ’yo-yo' 이름을 사용하는 독점권에 대한 도전은, 로열 요요라고 하는 회사의 joe radovan에 의해 이루어졌다. 던컨의 초기 필리핀 출신 데몬스트레이터의 한명인 joe radovan은 1937년에 던컨을 떠나 자신의 요요회사를 설립했다. 긴 법정공방의 끝에 1965년 던컨은 요요의 상표권리를 박탈당하게 돼서 ‘yo-yo'라는 단어가 이 완구에 대한 일반적인 호칭이 된다. ’yo-yo'라는 단어는 미국 안에서는 상표가 아니지만 캐나다와 일부 국가에서는 아직 상표로서의 ‘yo-yo'단어가 유지되고 있다.


‘yo-yo'라고 하는 상표를 잃음으로서 던컨의 신뢰도는 손상됐고, 결국 1965년 후반에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요요 메이커인는 파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던컨의 데몬스트레이터에 의한 서포트가 없어지면서 6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에 사이에는 거의 모든 요요 콘테스트가 치러지지 못했다. 요요는 이전과 같은 문화상징으로서의 영광을 잃기 시작했다. 던컨의 상표는 이후 Flambeau(현재 던컨의 모회사)에 매각돼 1969년에 다시 플라스틱 요요를 생산하기 시작했지만 미국에서의 요요 데몬스트레이터의 시대는 이미 지나가 버린 후였다.


일부 국가에서, 요요는 일종의 붐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국제적으로는 코카콜라. 러셀의 프로모션에 의해 수 백 만개 단위로 판매가 계속됐다. 1950년대 후반부터 잭 러셀이 요요라고 하는 단어를 미국을 제외한 지역에서 코카콜라와 거의 동의어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한 번 더 언급하자면 요요의 판매 성공을 위한 열쇠는 콘테스트와 러셀사가 코카콜라/러셀 요요를 전 세계에서 친숙한 요요의 브랜드로서 정착시킨 데 있다.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에 걸쳐 요요는 계속 매년 수 백 만개 단위로 판매됐지만 이전에 갖고 있던 문화적 상징성이나 인기, 존재감은 없어지고 말았다. 요요는 이 시기 때때로 전국 규모로 등장하는데 그 유명한 예는 정치와 연관된 것이었다.


1968년 초반, 반전 활동가 Abbie Hoffman씨는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선서를 하는 동안 요요를 꺼내 웍더독 기술을 하게 된다. 그는 법정 모욕죄로 추궁 받게 되는데, 이는 요요 플레이로 인해 받게 된 가장 큰 징계라고 한다. 1974년 후반에는 ‘워터게이트 사건’의 최대 중요 인물인 리처드 닉슨 전대통령이 테네시 주의 냇슈빌의 그랜드 올 오프라는 곳에 살고 있는 roy Acuff라는 사람을 방문한다. acuff는 ‘Opry'로 50년 이상 퍼포먼스를 계속 해온 전설적인 인물로 자신을 상징하는 움직임을 요요 트릭으로 보여준 적이 있다. 닉슨 대통령이 acuff와 함께 무대위에서 요요를 던지는 모습은 사진으로 찍혀 주요한 미디어에 의해 공개된다. 닉슨 대통령은 그 요요에 싸인을 했고, Acuff에게 선물했다. 수 년 후 그 요요는 Acuff의 자산 경매에서 16,029 달러에 매각돼서 현재까지 요요에 대해서 지불된 금액으론 세계 기록을 수립하게 되었다.

수 세기에 걸쳐 요요의 형상과 기능은 별 발전이 없는 채였다. 하지만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전반에 걸쳐 요요에 많은 기술적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톰 쿤이 세계 최초의 분해식 요요인 ‘no jive 3in1'을 발명한 것이다. 톰 쿤의 신발명에 눈에 띄는 프로모션 중 하나인 내부 구조까지 ’no jive'와 같이 만들어진 세계 최대의 요요도 이 시기에 제조되었다. 중량 256파운드, 직경 50인치의 이 목제 요요를 사용하려면 크레인과 3/4인치의 다크로 로프를 사용해야 했다. 이 요요는 1981년에 세계기록으로 인증 기네스북에 게재되었다. 다른 회사들도 새로운 요요의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그 중 플레이 맥스 사의 경우 공회전 시간을 길게 만들기 위해 축을 놋쇠 재질로 변경하고 몸체 외곽에 무게가 몰려있는 림웨이트 디자인을 도입한 요요를 개발했다. 1980년에는 mike caffery가 요요의 오토리턴을 가능하게 하는 클러치 메카니즘을 내장한 요요로 특허를 취득해서 1984년에 ‘yomega the yo-yo with a brain'으로 시장에 발매되었다. 같은 해 스웨덴의 작은 선전고지에서는 flores가 축에 줄을 거는 방식을 도입한 이래 가장 큰 요요의 변혁을 소개하게 된다. Svenska Kullagerfabriken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볼베어링 요요는, 그 이후의 요요 플레이 방식을 변화시켰다. 흥미로운 점은 이 발명의 충격을 사람들이 완전히 이해된 것은 이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후의 일이라는 것이다.


1985년 4월 12일 스페이스 셔틀 디스커버리호에 탑재됐던 노란색의 던컨 임페리얼 요요는 우주로 간 최초의 요요가 된다. 이 요요는 스페이스 셔틀 디스커버리의 미션 51-D인 ‘우주공간에서의 완구’라고 불리는 다른 9개의 완구와 함께 실시한 실현 시리즈의 일부였다. 당시 우주비행사 David Griggs는 우주에서 요요를 플레이한 최초의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영예로 생각한다고 했다. 요요는 1992년 7월 31일 셔틀 아틀란티스 호의 미션 STS-46에 다시 참가한다. 우주 비행사 Jeffery Hoffman은 ‘하이테크’ 요요인 SB-2 (Silver Bullet-2)를 사용해서 무중력 상태가 요요의 플레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실험했다.

요요의 인기는 1986년 코메디언인 Tommy Smothers가 그들의 데뷔작인 쟈니 카슨 쇼에서 한 ‘요요맨’ 덕분에 한층 가속을 얻게 된다. 그 인기는 1988년에 발매된 Smothers brothers 의 요요맨의 교육 비디오가 200,000개 이상 판매되면서 인구에 회자된다. '요요맨‘은 1988년부터 89년에 걸쳐 방송된 Smothers brothers에서 방영되는데 이 쇼에는 Dan Volk、Dale Myerberg、Barney Akers 그리고 bob rule라고 불리는 전설적인 데몬스트레이터들이 출연했다.


1988년에는 요요 타임즈라고 하는 신문이 Stuatt crump에 의해 최초로 발행되었다. 요요 타임즈는 요요 커뮤니티를 활성화시켜 요요팬들 사이에 주요한 정보원이 되었다. 요요 타임즈는 요요와 관련된 정기간행물로는 최고 오래 된 것으로 이후 1990년대의 요요 붐과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대에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폭발적인 인기가 찾아온다. 던컨 패밀리 콜렉션을 시점으로 해서 ‘return of yo-yo'쇼와 1990년부터 91년 사이 미국의 Taubman mall을 위주로 요요 콘테스트가 재개됐다. 요요 플레이에 있어서의 자극만이 아니라 요요의 콜렉션도 플레이어들의 사이에 유행하게 된다.


가장 큰 기술적 진보는 트랜스 액슬의 개발이었다. 트랜스 액슬은 이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됐던 레벨로의 문을 열었다고 할 정도로 긴 공회전 시간을 실현했다. 미국 요요 협회의 공식 기록으론 고정축 요요의 공회전 세계 기록이 1991년에 데일 올리버가 수립한 51초이고 현재의 AYYA에 의한 트랜스 액슬 슬립 기록은 2001년 4월 22일 릭 와이어트가 수립한 13분 5초로 충격적이라고 할 정도로 차이가 난다.


데일 올리버의 지대한 노력덕분에 1992년에 개최된 현대식 요요 콘테스트의 제 1탄은  1993년에 결성된 American yo-yo Association(AYYA)을 구성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제 1번째의 근대의 내셔널 요요 콘테스트는 훗날 내셔널 요요 박물관의 책임자가 되는 밥 마라오니에 의해 1993년 캘리포니아 주 치코에서 개최된다. 1996년 처음으로 전미대회에서 개최된 프리스타일 부문에서 알렉스 가르시아가 우승한 것을 계기로 요요콘테스트는 극단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프리스타일 대회는 오늘날 전국대회는 물론 세계 규모의 이벤트에서도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자리잡는다. 요요 플레이는 그 이후로도 진화를 거듭해 ‘오프 스트링’이라고 불리우는 요요가 줄에 연결되지 않고 마치 디아볼로와 같이 움직이는 기술이 개발 되었다. 최근의 발안으로는 스티브 브라운에 의해 개발된 ‘프리핸드’를 들 수 있다. 요요를 손가락에 끼지 않고 무게추에 걸어서 요요를 손으로부터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요요는 지금까지 유구한 세월을 거쳐 존재해 온 완구의 하나이며, 앞으로도 수세기에 걸쳐 플레이 되며 발전해 갈 완구일 것이다. 20세기 영국의 완구 소매 협회는 요요를 ‘금세기의 열광’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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